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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모녀

2024-09-20

          십대 자녀 셋을 데리고 40대 초반의 여자가 절에 온다. 법회 후 남아, 본인은 불자라기 보다는 명상공부를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애들 학교 때문에 미국에 따라 온 것이라고 한다. 그보단 다른 사정이 있어보인다고 했더니, 말이 없다. 저녁때가 되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준다. 이렇게 한 번 방문한 그들은 법회 아닌 때에 절에 온다. 법회때 오라니까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 주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절에 와서 머물다 저녁을 먹고 가는 일이 한동안 지속된다. 나는 오후 불식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저녁을 차려 준다. 여기서는 왜 자꾸 일반인에게 밥을 해주게 되는지 어리둥절이다. 그러던 어느날 애엄마는 묻지도 않은 자기 얘길 술술 한다. 사실은 한국서 남편으로부터 도망왔다, 스님이 다 아실것 같아 말씀 드린다, 남편은 마음공부하는 사람이다, 그 절에 공부하러 다니다 같이 살게 됐는데 그때가 스므살 때다. 내가 놀라니, 조계종 스님이 아니라고 한다. 어느날 부터, 남편과 자주 싸우게 돼서, 주로 너무 구속을 해서, 떨어져 있고 싶어서 멀리 미국까지 오게 됐다, 남편이 애들 학비는 보내준다, 혼자 공부하러 가겠다고 하면 안보내줄까봐 애들 잠깐 어학연수 시킨다고 하고 나온 뒤 안 들어가고 있다, 생활비가 부족해서 본인은 학교를 쉬고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데, 학생비자로 와서 일에 제한이 있다... 안 봐도 무슨 사정인지 다 알겠다. 연이 더 깊어지기 전에 인연을 끊기로 한다. 영화사는 4명의 식구를 돌볼 여력도 없고, 있다 해도, 속인과 중이 한공간에서 살 수는 없다. 날을 잡아 나는 그들을 데리고 여행을 간다. 베이 근처에 가서 마을 구경도 하고 밥도 먹고 돌아와, 그들과 만난 파킹랏에서 헤어진다. 애초에 절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쇼핑몰 주차장서 만나자고 했다. 중적으로다가 절에서 헤어지는 일은 하고싶지 않아서다. 나는 주차장에 서서 여기서 우리 이별하자, 사실은 이게 이별여행이다, 더이상 절에 안왔으면 한다, 저녁마다 찾아오는 거 너무 부담되고, 또 나는 영화사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불자로 절에 오는 이가 아닌 이는 만나지 않겠다, 법을 세웠다 말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혹시 잘못한게 있냐며, 스님이 너무 좋다고 한다. 나는 좋은 사람 아니라고, 좋은 사람이고 싶지도 않다고 말해준다. 영화사는 절이고 나는 스님,이라고 말한다. 불자가 아니므로 당연히 이 말을 못알아 듣는다. 애엄마는 조금 놀란듯 했으나, 이미 이유를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이런 순간이 한 번이 아니었을 거라는 걸 나는 이미 안다. 그 후 두어 달 뒤 그들은 핼로윈데이때 모두 공주 코스튬을 하고 캔디 바스켓을 들고 절에 들른다. 잘 살고 있냐니까 잘 살고 있고 곧 다른 곳으로 이사간다고 한다. 학교는 어쩌고 이사가냐고 하니, 좀더 나은 학교로 가려고 한다고 한다. 늦은밤 그들이 빠져나가고, 나는 속에서 뭔가 일어나려는 마음을 이뭐꼬,로 누른다. 이곳에는 그 배경을 추적할 수 없는 부초같은 인생들이 많다. 동부에서 서부로, 아리조나에서 캘리포니아로, 주를 떠돌아다니며, 옮길 때마다 이름을 지미에서 스티브 등등으로 바꿔, 좀처럼 그 뿌리를 알기 힘든 사람들이다. 잘못을 하고 사라져도 스티브는 이미 존이 되어 있어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주로 교회나 절같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공동체를 찾아간다. 묻지 않은 이사 온 사연을 스스로 말하며, 단시간에 인간적인 신뢰를 쌓으려 노력하며, 정착하기 위해 필요한, 이런저런 도움을 단계적으로 요청하고 받는다. 때로 정착해서 오래 잘 살기도 하지만, 거의 얼마 지나면 사라지고 없다. 아무 뒤탈없이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먼 후일, 지금은 한국으로 가고 없는 베이쪽 스님으로부터 자녀 셋 데린 여자가 절에서 며칠만 살게해달라고 왔다, 이유는 이사 왔는데 들어갈 집과 이사일이 맞지 않아서라고 했다,는 얘길 듣는다. 잠시 있으라고는 했는데, 좀 난감하다 하신다. 나는 아무 말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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