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서리 가게에서 계산을 하려 서 있는데, 한 여자가 스님이시냐면서 말을 건다. 한국 같으면 스님이냐고 묻는 거 자체가 없다. 보면 스님이기 때문이다. 혹시 묻는다면 어느절에 계시는가, 이다. 그 절에 언젠가는 갈 수도 있는데, 스님 한 분 알면, 처음 가는 그 절이 아는 절이 된다.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불자들은 안다. 이곳에선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절법과 스님을 대하는 법 그 자체를 아는 이가 없다. 불자라면서도 스님 보고 합장저두 하는 이를, 현재 시점, 이 년이 넘도록 못봤다. 3 년은 포교보다 '미국 불교와 불자'를 공부하는데 투자하기로 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막막해질 뿐이다. 초창기 한국에 간 기독교 선교사처럼, 불교가 무엇인지, 스님은 뭐하는 사람인지 부터 해얄 거 같다고 결론에 이르르는 중이다. 그 며칠 후 이 보살은 절에 온다. 불교 보다는, 바로 치매 걸린 어머니 얘길 한다. 어머니가 불자였다고, 얌전한 치매시며, 낮에 일 나가고 나면 혼자 계시는데, 걱정도 되고, 본인도 갑갑해하신다... 더 듣지 않아도, 스님이 이 어머니를 낮동안 보살폈으면 하는 거다. 스님은 절에 가만히 있나, 그 누구보다 할일이 많고 바쁘건만, 일을 안 다니니 혼자 심심하지 않냐, 묻는 이도 있는 걸 봐서는, 모두 스님이 노는줄 아는 눈치다. 스님은 스님 본업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들에겐 안보이는 일인가 한다. 평생 스님 일상을 본 일이 없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나는 환자 돌볼 수 있는 자격증도 없고, 여기선 잘못되면 그 법적 조치가 한국 같잖게 어마어마하단 걸 잘 알아, 불가능이라 한다. 바로 절에 안 온다. 자기도 법회때 있고 싶으니, 아이를 봐주는 이가 절에 있으면 좋겠고, 몸이 아프니 와서 살펴 달라, 지붕 고치는거 같이 해달라, 와서 밥 같이 먹자!, 운전 못하니 픽업 와 달라, 이사 도와 달라... 버라이어티 하지만, 그 중 법을 청한 이는 한 명도 없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기가 도박병에 걸렸으니 카지노에 가지 않게 자기랑 좀 같이 놀아 달라고 한다. 듣자니 카지노에서 재산을 다 날리고 남편과도 곧 이혼하게 생겼다. 나는 놀러 나갈 순 없고, 심심하면 매일 절에 오라고 하니, 너무 멀다 한다. ? 카지노는 더 멀다. 아무튼 이들은 본인만이 아는 어떤 절이 다 있는 거 같다. 그러나 그건 통상 절도 아니고, 스님이 할 일도 아니다. 스님이 하고 싶으면 기꺼이 봉사 할 수 있는 일이나, 그쪽에서 정할 일은 아니다. 그때마다 하고픈 말은 많으나 입을 닫는다. 말해봤자다. 스님 자체를 모르는데 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느날은 돌아가신 분의 며느리인지가 돌아가신 분 쓰던 짐을 차에 싣고 와, 내려놓겠다 한다. 망자가 생전에 절을 좋아했다는 이유다. 오래된 김치 냉장고와 그릇들, 한국형 낡은 상 둥등... 물건 많이 없이 사는 게 좋은 이 중은 나중에 돈 치르고 버려야 할 것을 알면서도 그러라 한다. 처음도 아니라 놀랍지도 않다. 여기 사람들은, 냉장고, 청소기 같은 거 새것을 사게 되면, 고장난 게 아니니 절에서 쓰라며 헌것을 들고 온다. 본인이 안 쓰려고 했을 때는 분명 그것에 문제가 있단 건데, 왜 절에 가져와도 된다 여기는 건지, 그 행 자체보다 그 발상이 어디서 온건지, 중은 그것이 너무나 알고싶다 이다. 이런 일련의, 한국 절에선 전혀 볼 수 없던 일들을 대할때마다 죽게 갑갑한데 뭐라 할 말이 없다. 쓰던 청소기를 가져온 이를 잡고 물으니, 절에 이런저런 사람이 있으니, 누군가는 쓸 수도 있지 않겠나, 한다. 그 누군가,는 남이 쓰던 것을 좋아하나, 작동 더딘 것을 새것처럼 쓸 줄 아는 신통력이 있나. 아무튼 그들은 절은 자기가 이러라면 이러고 저러라면 저렇게 되는 곳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결론이다. 문제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그 시발점을 당최 모르겠다는 것이다. 알아야 어떻게든 해볼텐데 모른다. 그런 걸 누가 알려준 건지, 아르켜준 이가 있기나 한건지, 있다면 왜 그런거냐고, 멱살 잡고 묻고 싶다. 그러나 이때나 후에도,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