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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 데린 여자와

2024-06-27

          본격적으로 미국에 살아보기로 한 뒤, 나는 법회 외에 ESL, 드라이브라이센스, 소셜세큐리티카드, 핸드폰 개통 등등의 미국에 살기위해 필요한 기본준비와, 뒤틀린 이곳 미국 불교의 비롯과 근원을 찾고 공부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아침에 ESL에 가려고 나서는데, 웬 차 한 대가 그라지 앞으로 쑥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여자는 가슴골이 보이는 민소매에, 발가락 끼운 슬리퍼 속의 맨발인 차림이다. 맨발은 이제 놀랍지도 않지만, 절에 헐벗고 오는 사람은 또 첨 본다. '법회는 오늘 아니고...' '그냥 절이 있대서 무작정 왔어요, 급해서요. 잠시 들어가서.' '아니, 일단 용건부터. 길어질 얘기면 오후에 다시 오든지 합시다.' 이젠 사람을 함부로 들이지 않으려 한다. 법회날 아니고 무작정 찾아온 이들은 대부분, 불자의 용무로 온 이가 아니다. 처음엔 재 요청인가, 혹은 공부 질문인가, 끝까지 상대하였는데, 보면 늘 그냥 놀러온 거여서 그리 정하게 됐다. 얼마전엔 웬 60대 여자가 최근 리타이어를 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아 심심해서, 절엘 좀 다녀볼까 한다며 왔었다. '그런 이유라면 사람 많은 교회를 가셔요. 여긴 사람도 적고 재미도 없어요.' ' 안그래도 교회도 가봤어요.' 여자는 아, 절이 이렇게 생겼구나, 기웃대며 부산스럽게 군다. 제발 앉으라고 한다. '여긴 한국처럼 너른 절도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놀러 다닐 곳은 아닙니다만. 게다가 난 늘 바빠요' '네 ? 스님이 너무 불친절하시다. 스님은 자비 아녀요?' '자비가 뭔데요?' '네 ? 스님이 자비를 모르세요?' '그니까 뭐냐고요, 자비가.' 여자는 못들은 척 하던 얘길 마저 줄줄 하곤, 가면서는 '목사님은 디게 친절하시든데...' 했다. 이들은 스님에 대한 자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상하게도 '스님은 이래야 한다,'는 다 가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람들을 몇 차례 치르고 나니, 이젠 누가 오면 이크, 싶다. 약속도 없이 찾아와, 마치 짠것처럼, 주로 미국에 왜 왔으며, 정착하기까지의 고생한 얘기와 '왕년에 날리던? 금송아지' 운운이다. 나는 그들 얘기 속에서 늘 외로움을 본다. 이곳에선 아무도 이런 개인사를 들어주는 이가 없는 모양 같다. 오늘의 이 여자는 가느다란 갈매기 눈썹을 찡그리고 말없이 섰더니, 차문을 열고 큰 쉐퍼드한 마리를 보여준다. 그리곤 최근에 결혼한 미국 남편이, 두번째 결혼이다, 이 개를 정말 싫어한다, 매번 싸우다가 쉘터에 데려다주려고도 했는데, 입양자가 없으면 죽인단 얘길 들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남편은 결혼 전에는 안그랬는데 개한테 점점 무섭게 화를 낸다, 개는 애초에 여자가 혼자 키우던 것이다, 고민 중에, 어쩌면 절에 가서 부탁해보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왔다, 그러니 좀 맡아주면 좋겠다, 사료값은 내겠다, 한다. ????? 혹시 이곳에 살고있는 스님들은 애들 학교 픽업드랍에, 병원, 공항 라이더에, 일상 심부름 같은, 신도들 갖은 뒤치락거리를 하며 산다는, 거짓말 같은 소문이, 헛소문이 아닌 건 아닐까, 의심이 확 드는 순간이다. 소문엔 한 스님은 건물 청소를 하며 살고 있다고도 하고, 어떤 스님은 리쿼스토어를 한다고도 한다. 나로선 듣고도 절대로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애니웨이, 사람들이 절에 와서 뭐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근원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곳 사람 모두가 절을 만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라는 관점에서 보면 좋아해야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중적으로다가 생전 처음 당해보는 일에 너무 황당해서, 마치 전봇대처럼 서 있는다. 그래도 개주인하고 차담을 해야 하나, 생각하는 와중에, 울듯한 여자를 보니 측은지심이 솟구친다. 상대는 죽어도 모룰 이 측은지심이 대체 뭐란 말인가. 이뭐꼬다. '보다시피 여긴 저런 큰 개를 둘 데도 없거니와, 있다 해도, 난 개 돌볼 여력이 없어요.' 나는 그만 가라고 손짓한다. 여자가 원망스런 표정으로 돌아선다. 그 뒷모습에 측은심도 재빨리 얹어보낸다. 결국 ESL엔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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