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 깬다. '스님, 어떤 사람이 유홀을 가져와서 스님을 뵙겠다고 해요.' 시간을 보니 열두시가 다 되어 간다. '뭐? 유골을 가져왔다고? 이 밤에?' 이때의 나는 유홀이 뭔지 모른다. 유홀을 가져왔다는 걸 유골을 가져왔다로 듣고는, 저간 사정이 있나보다 여겨 벌떡 일어난다. 밖에 나가니 흰 소형트럭을 세워 놓고 웬 여자가 서 있다. 지금 이사짐 옮기는 중인데, 이사 가는 곳엔 화분 둘 자리가 없어서 절에 내려놓고 가려고 왔다고 한다. 큰 화분 네 개를 뜰 쪽 창 아래 이미 내려놓았다. 이사란 말에 문득 기억이 난다. 이이는 강이란 중년 여성으로 몇 번 절에 온 이다. 강은 불자는 아닌데 올구와 안면이 있다고 들었다. 지난 해 가을 법회날 와서 내게 인사를 하고 몇 번인가 더 왔다. 두 번 째 만난 날, 자기가 반 지하 방에 살고 있는데 누군가 창문을 뚫고 들어오려 했었다며 무서워서 집에 못가겠다고 절에서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하여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이 있다. 새벽에 내가, 나와서 백팔배도 하고 예불 참선도 하라고 하니, 자기는 그런거 모른다며 누운 채 나오지 않았다. 도둑 잊을때 까지 며칠 묵었으면 한다더니 그 하루만 묵고 안왔다. 그 며칠후 강은 짐 몇개를 좀 맡아달라며 박스 몇개를 내려놓고 갔는데 한동안 감감이다가 오늘 다시 출현인거다. 결국 이사를 결정한 거 같다. 나중에야 유홀은 유명한 운송 회사로, 갖은 싸이즈의 트럭과 트레일러를 빌려주는 회사임을, 옆방 유학생이 일러줘서 알게 된다. 유학생은 얼마전 건넌방 하나를 얻어 들어왔다. 한국에서 와보니 그리 되어 있다. 아무리 내가 여기 없었어도, 같이 살 사람이 난데, 적어도 내게 물어는 봐야 하는게 아니냐, 올구에게 말했더니, 이사는 나 오기 전에 이미 정한 일이고, 학생이 온다 했을 땐 내가 한국에 있어, 말을 못했다고 한다. 학생은 올구가 절에서 먹고 자고 하숙하면 된다고 했다 한다. 올구는 학생을 속인 것일까, 아님 나를 속인 것일까. 방세가 한달 전기세라며, 전기세도 얻고, 방세 싸게 학생도 돕고, 서로 윈윈?으로 방 한 칸만 빌려준거라고 나에겐 했다. 그리하여 현재는 스님이 보살 밥을 해주며 같이 살고 있는 참이다. 절 공양 낯선 며칠만 스님밥을 앉아 먹겠거니 했더니, 열흘이 지나도 밥 먹고는 그냥 일어나, 본인이 먹은 건 본인이 치우라, 했더니 자기는 하숙을 왔는데 왜 그래야 하냐!고 해서 입을 다물었다. 언제든 모르고 우기는 데는 백 말이 소용이 없다. 불자가 아닌 하숙생은 잘못이 없다. 천천히 불자로 가르치리라, 했다. 애니웨이, 강은 그 후에도 잊을만 하면 한밤중에 와서 수도를 세게 틀고 물을 주고 가곤 했다. 나는 잠귀가 밝다. 한번은 물소리에 깨어나, 물을 살살 줄순 없냐 했더니, 자기가 물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날아가서 기분이 좋다며, 뜰이 흥건하도록 철철 물을 줬다. ??? 날은 더워지는데 그런 물주기도 어느날 부턴 뚝 끊겨, 화분 돌봄은 내 차지가 된다. 날이 흘러 봄이 익자 삐쩍 말랐던 1미터 남짓의 모든 나뭇가지에서 꽃눈이 터지더니, 신심나게 붉은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홍매가 거의 다 피었을 무렵, 까마득히 잊었던 강이 중형 승용차를 몰고 등장한다. 이사한 곳에 이제 자리가 잡혔다며 화분을 가져가겠다고 한다. '이 차에 화분이 들어가겠어요? 안될거 같은데...' ' 아뇨, 돼요.' 트렁크를 열고 화분을 두 개를 눕혀 싣는다. 꽉 찬다. 뒷좌석 문을 열고 나머지 두개를 넣으려 하니 꽃가지가 문에 걸린다. 꽃이...후두둑 떨어진다. ' !!! 안 들어가면 여기 뒀다 나중에 픽업트럭 같은 걸 가져오는 건 어때요? 아니면 여기 더 둬도 돼요.' ' 아뇨, 내가 꽃을 너무 사랑해서요.' 그이는 한참 피어난 꽃가지 위쪽을 우두둑! 꺾어 화분 옆에 던진다. 다 꾸겨 넣고는, 안 닫히는 트렁크를 연 채, 거두절미, 휭하니 사라진다. 나는 마치 핏방울처럼 점점이 땅에 떨어진 붉은 홍매를 줏어들고 우두망찰 서 있는다. 꽃을 사랑해서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