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 뒤뜰엔 잔디가 깔려 있고, 왼편엔 오렌지나무와 체리나무가 삐딱하게 서있다. 오른쪽 구석엔 야외용 수도꼭지에 연결된 긴 고무호스가 있어, 그것으로 아침 저녁으로 잔디에 물을 주고 있다. 올구가 집주인이 잔디를 죽이지 말라 했다 한다. 절이 집세를 내는 곳이라니 신기할 뿐이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믈처럼 만든 스틸담장 너머, 초등학교 운동장이 있어 개방감이 있다. 담장은 높고 그 담장을 따라 에버그린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서, 저 멀리 보이는 학교 건물은 나무 사이로 분할되어 보인다. 아침무렵 챠임벨 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더러 공놀이 하는 모습도 보이나, 담장 근처까지 아이들이 오는 일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상하게 학교를 비롯해, 저녁 5시만 되면 온 세상이 조용해지는 게 너무 이상하다. 한번은 올구(올리비아 엄마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선 저녁엔 사람들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 사람은 아무리 설명한다해도 이해못할 부분일 것이다. 주택가엔 주택만 있고, 편의점 하나 없다. 상점은 쇼핑몰이라고 해서 다른 지역에 따로 모여있다. 장을 보려면 반드시 본인 차를 타고 최소 삼십 분은 가야한다. 대중교통이 없다! 차가 없으면 발이 없는 것과 같다. 집마다 차가 기본 두 대 이상인 이유다. 미국이 잘 살아서가 아니다. 미국의 삶의 패턴이 그렇다. 14세 부터 운전을 한다. 오늘은 잔디에 물주기 전에, 벼르고 있던 잡풀들을 좀 뽑아보리라 한다. 미국 잔디는 한국잔디와 모양이 다르다. 좀 더 초록이고 좀 더 부드럽고 주기적으로 깎지 않으면 많이 웃자란다. 한참 잡풀 뽑기에 골몰해 있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드니, 담장에 아이들 몇이 그물을 움켜쥐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중 금발곱슬머리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핼로. 인사를 건넨다. 아이는 대뜸, '유 노유 왓?' 한다. '왓?' '저 흙더미가 뭔지 알아?' 아이의 손길이 머문곳에 프라스틱 팩을 덮은 불룩한 흙더미가 있다. '여기 언제 이사 왔어?' '한 달 전에?' 아이가 이미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있잖아, 전에 여기 살던 사람이 개를 거기다 묻었어. 이사를 가야 하는데 개를 데려갈 수 없어서 묻고 갔대. 얼,라,이,브.' 아이가 야무지게 입을 놀리며 심각한 어조로 속삭인다. '뭐? 산채로?' '응. 산,채,로,오. 파보고 싶어?' '노.' 나는 빠르게 거부한다. 그들의 눈이 반짝인다. '너네가 직접 봤어?' '아니. 그 아들이 우리 학교 다녔어. 파볼래 ?' 사실일까, 하나쯤 떠도는 흔한 학교 루머일까, 지어낸 말일까...빠르게 념을 해본다. '음...내 생각엔 너희가 와서 같이 파보면 어떨까 싶어. 너네가 서로 도우면 담을 넘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일어서서 다가가자 아이들이 와악, 하며 참새떼처럼 흩어져 달아난다. 처음에 뒤뜰에 나와봤을 때 안그래도 그 비닐이 씌워진 불룩한 작은 무덤모양이 궁금하긴 했다. 왠지 건드리면 안될 거 같아 그냥 일별하고 말았던 거다. 오후에 마침 올구가 결산하러 왔길래 묻는다. '저 뒤뜰에 비닐 씌워진 흙더미 뭔지 혹시 알아요?" '아, 그거요 ? 만지지 마세요.' '왜..요?' '거름 들었어요. 전 스님이 지난 봄에 호박 키운다고 음식물 쓰레기 모아 퇴비 만들고 있던거예요.' !!! 나는 애들이 나에게 한 얘길 전한다. 올구가 손뼉을 치며 호호호 웃으며 '스님이 한방 먹으셨네요. 스님 체구가 작아서 또래 친군줄 알았나봐요,' 한다. 이 나라엔 예의가 없다. 있어도 그들 식이다. 예의를 몸에 달고 살던 사람은 그들의 태도가 심히 당황스럽고 대할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된다. 예의가 원래 없는 세상에서는 예의를 아는 놈이 약자이다. 예의를 모르는 자는 무례로 상처 받을 일이 없다. 이곳 처처엔 저 쇠그물 담장처럼, 그 안이 보이는 듯하나 넘을 수 없는, 여러 높은 벽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