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의 두 번째 초파일이다. 초파일에 무엇을 해야하는 지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어도, 우묵한 비빔밥 그릇도 사고, 김치도 담그고, 연등도 몇 개 만든다. 뜰에 적게나마 등줄도 매야 하고 등도 달아야 하는데, 나서는 이가 없으니, 일꾼 모드로 일이 되게 하느라 초파일 전에 이미 완전 그로기가 된다. 법회날에도 공양준비 하랴, 법회 진행하랴... 보이지 않게 혼자 뛰어다닌다. 새삼 한국 있을 때 신도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절을 위해 해주었는 지 알게 된다. 그리고 스님도 아는 이에게나 스님이지, 모르는 이에겐 그저 겉모양이 좀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된다. 그럭저럭 늦게 온 사람들까지 모두 공양하고 돌아간 뒤, 올구에게 마무리를 부탁하고, 아픈 다리를 꺾고 비로소 거실 테이블에 앉는다. 이제 좀 쉬려나 하는데, 낯선 남녀가 들어와 합장저두도 않고, 앉으란 말도 안했는데 맞은편에 와 덥썩 앉는다. 용무가 있어 왔다며 하는 말이, 저 옆동네에 절이 하나 있는데, 거긴 그래도 여기보단 땅도 넓고 절꼴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으니, 되도 않는 이 작은 절은 문을 닫고, 그리로 가는 게 어떠냐, 간다고 하면 거기 스님은 자기네가 나서서 알아 하겠다, 그 절에 스님은 베이에서 한 달에 한 번 오는데, 우린 늘 절에 있는 스님을 원한다, 절울 합하면 스님 둘 한테도 좋고 우리도 좋지 않겠냐, 스님도 여기서 절 문 열고 있어봐야 올 사람 없다, 한다. '사정이 뭐든 만약 거기 스님이 계시다면, 합하든 어쩌든 스님끼리 할 얘기지 당신이 먼데요?' '아니,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합니까 ?' 나는 뭔소린지 못 알아 듣는다. '건 그렇다 치고, 거기 스님이 있는데 굳이 왜 날 갖고 그러는데요? 날 모르잖아요.' '비구니를 데려다 놓으니 좋더라고요, 비구는 밥이든 뭐든 다 우리가 해줘야 하는데, 비구니는 알아서 다 하드라구요.' !!!!!!! 그때 그라지로 나가는 올구에게 나는 '이이가 뭐래는지 들었어요? 여기와서 뭐래는지 좀 들어봐요, 스님이 중생이랑 싸울 수도 없고,' 한다. 둘은 태연하다. 듣자하니 거기 스님도 싫어, 그 절에도 안 나가, 그 절 일에 왜 상관인가 물으니, '그 절에 내 돈이 들어갔거든요,' 한다. !!! 이때 니는 완전히 알아봤어야 했다. 이들이 이런 사람들이란 걸. 그러면 향후 삶이 많이 수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의 나는 여전히 한국 중이라 이 거사가 좀 특별히 이상한 인간인가 보다 하고, 피곤하니 그만 가라 한다. 남자는 '우리가 기껏 돈들여 절을 열어놨더니, 블라블라블라...' 한참을 더 한다. 나는 그건 니 얘기고 그 스님 말을 안 들은 이상, 니 얘긴 안 들은 거로 하겠다, 이딴 시비거리 다시 들고 오면 가만 있지 않겠다, 하고 일어선다. 속으로, 어디까지 봐야 이곳의 불자연 하는 이들의 버라이어티의 끝을 볼까 한다. 그들이 가고 난 뒤, 올구는 이곳 사람들이 영화사를 등진 원인이 자기한테 있기도 하다며, 그 부처님 스틸 사건 이후 떠난 몇 사람들이 다른 절을 다시 열게된 과정과, 그동안 생긴 여러 사건 등을 브리핑 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나 이젠 충격받지 않기로 한다. 찾아욌던 그 남자는 돌아간 그 길로 얼마 안 가 쓰러져서 한 일 년 앓다가 세상을 떴다. 주지란 절 유지를 위해 주한다는 뜻으로, 중심 자리를 뜻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힘과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주지가 하는 일은 많은 대중을 위호하는 일이다. 주지가 중심을 잃으면, 대중간 시비가 생기고 화합이 안 되어 절간의 평화를 잃게 된다. 해서, 그 누구도 주지를 좌지우지해선 안된다. 평소 나의 주지에 대한 잣대는 덕이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 평가하건데 덕이 부족하다. 미국에 와서 나는 은사스님이 내게 자주 말씀 하시던,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못산다,를 자주 떠올린다. 법은 있으나 덕이 없다는 소리로 혼자 이해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내 덕 없음을 신도들에게 자주 어필하곤 한다. 지금은 물고기보다 맑은 물이 중요하다. 정화를 우선으로 있기로 한 바, 다른 것은 덕이든 자비든 당분간 아예 꺼내지도 말아야 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