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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이비

2024-10-31

          올구가 전화를 받더니 곧 손님이 올거라고 한다. 나는 영화사 전화는 받지 않는다. 몇 번의 경험으로 이미 물려서다. 그 중 압권은 장목사라는 사람이 전화를 해 되도 않는 경전 구절을 들이대며 시비를 건 것이다. 나는 종교인이지만 타 종교의 흥망성쇠엔 장목사처럼도 관심없다. 내가 배우고 소속된 절은, 오라 안해도 신심 깊은 불자는 오래 찾는, 그런 배경에 있다. 특히 나는 누가 오래서 절에 간것도 아니고, 누가 권해서 출가를 한것도 아니고, 참선 공부하다 끝장 보려면 출가 밖에 답이 없다 싶어서 스스로 중이 된 것이어서, 남들도 불교에 대한 자세가 대충 그럴 것이다, 라고 믿고 있다. 이즈음 나는 절에 새로 놓을 건 넣고 버릴 건 버리면서 인법당 모양을 보다 대중들이 공부할 수 있는 절 모양으로 만드는데 치중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찾아온 이들을 차례로 면담하고, 불교 공부가 목적인 사람만을 거르고 있다. 미국이란 곳은 교포에겐 쓸쓸한 곳이다. 그들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살고 있지 않다. 그래서 교회나 절에 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 홀로 있지 않다는, 한국사람이라는, 외롭지 않다는, 어떤 증명처 같은 거다. 절에도 오로지 불교를 알고 배우기 위해 오는 이들은 거의 없다. 막연히 절이 좋아서다. 심심해서 절에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으나, 내가 일일이 상대할 일이 아닌데, 승속의 경계를 어디부터 그어야 할지가 이곳에선 어려운 일이다. 오늘 온다는 이가 누구든, 보나마나 자기 역사 얘기하고, 당연한 듯 차 마시고, 귀한 남의 시간을 뺏고서도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떠날 것임을 알아, 이미 만난 듯하다. 찾아 온 남자는 페어필드에서 왔다고 한다. 공부를 집에서 혼자 하고 있는데, 공부의 시작은 오래 전에 이곳을 다녀간 이국 스님을 우연히 만나고부터이다, 몇 달간 스님에게 배우다 그 스님 가고 혼자 공부를 오래 했는데, 혼자 하다보니 궁금한 것이 많아서 그 얘길 하러 왔다, 뭔가 자꾸 보이고, 때론 벽 너머도 보인다, 그 벽도 통과할 수 있을 거 같아 해보고 싶은데 갇힐까 무서워서 시도는 안해봤다, 남의 미래가 보이기도 하고...  '됐고요, 그래서요.' '네 ?' '그래서 뭐요. 벽 너머가 보이든 미래가 보이든.' '네 ?' '그니깐 뭐가 보인다, 그거 말하러 오신 거여요?' 남자는 저으기 억울한 표정이다. '스님이 뭘 모르시나본데, 내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네 압니다. 하지만 보이고 그러는 거 별거 아녀요. 흔한 현상이고요.' '그러니까 지금 신통에 대해...' '지금 행복하신가요 ?' '네 ?' '공부가 익으셨다면, 벽 너머가 보이는 게 아니라, 샘솟듯이 날마다 행복이 솟아야 해요. 무엇보다 지금처럼 화도 안 나고요.' 남자는 내 말에도 포기 않고, 공부 경계에 대한 무익한 얘길 오래 토해내고, 나는 묵묵히 듣다 일어선다. 오늘도 나는 '사람을 낚는 요한과 베드로'는 되지 못하고 또 한 사람을 야단쳐 보낸다. 올구가 스님은 왜 자꾸 오는 사람을 오지 말라고 하냐고, 한 사람이 필요한 때라며, 잔소리를 한다. 나는 어중이떠중이 아니고, 진심  불교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여기 있다고, 몇 번이냐 말해야 하냐고, 더이상은 말 않는다. 그러나 오가는 이와 잡담이나 나누자고 이 힘든 절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다, 불교 안할 사람은 앞으로도 안 만날테니 그런줄 알라, 한다. '그치만 일단 다녀야, 다니다 보면 불교 하지 않겠어요?' 올구는 물러설 맘이 없어보인다. 장담하지만 절대 그런일은 없다. 불종자는 애초 다르다. 내 단호한 표정에도 올구는 못마땅하여 입을 내민다. 이이를 언제 신심 있는 불자로 만들겠나 싶다. 안되면 영화사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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